매맞는 아이들에게 관심을 .

매맞는 아이들에게 관심을 .

지난번 SBS TV에서 방영했던 사건과 사람들을 보고 몇글자 적습니다. 사실 뭔가를 해야한다는 것에도 자신이 없었고, 사회에 대해 뭔가를 얘기한다는 것에도 자신이 없었습니다. 나 역시 너무나 많은 결점을 가지고 있고, 너무 많은 잘못을 저질러왔기에 혼자 떠들어댄다는 것이 우습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과연 내가 세상을 향해 떠들 자격이 있을까? 점점 제 존재가치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해갑니다. 하지만 자신의 잘못이 있다고 다른 모든 사회적인 문제를 외면한다는 것도 옳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많은 분들이 그 프로를 보고 참 끔찍하다고 말씀하시더군요. 하지만 전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끝날때까지 계속 소리없는 눈물을 흘리긴 했지만, 그다지 충격적이진 않았습니다. 어느 시대에나 그런 미친인간들은 있게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정작 절 화나게 하는 건 기성세대나 언론들의 태도입니다.

그 프로그램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친아버지가 재혼을 한 후 계모와 함께 본부인의 자식들을 학대하고, 때리고 심지어는 밥조차 주지 않아 딸아이는 영양실조에다가 매가 겹쳐 죽었고, 그 아이를 집에다 생매장하고 나서도 둘째 남자아이를 똑같은 방법으로 학대해 그 아이도 영양실조와 가혹행위가 겹쳐서 얼마 살지 못할 상황에서 주민들의 신고로 경찰에 발각된 일입니다. 아이들을 때리다가 아이들에게 면역이 생기니까 나중에 다리미로 지지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 프로그램은 그저 귀엽게 자라온 아이들만을 보아온 사람들에겐 확실히 충격적이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냥 저런 짐승들은 재판도 없이 죽여야한다고 말하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한 대한민국은 아이들에게 지옥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무관심한 어른들은 죽어가는 아이들에 대해 떳떳할 수가 없습니다.

경찰청 사람들을 보니 아이들을 데려다가 심지어 병원에서 영아까지 사다가 앵벌이를 시키고(하루에 40만원 정도를 벌어오면 3~4천원의 돈을 줬다고 합니다) 목표량을 채우지 못하면 온갖 욕설과 구타를 하다가 잡혀도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만원 이하의 벌금이면 된다고 합니다.

청소년을 보호하자고(사실은 청소년을 자기들 입맛에 맞게끔 훈욕하려는 의도겠지만요...) 호들갑을 떨던 언론과 정치인들도 이런 일엔 침묵으로 일관합니다. 아이들이야말로 어떤 상황에서도 자길 보호할 수 있는 힘이 없는데도 말입니다.

정작 시급한 아동복지법 개정엔 무관심한 정치인들, 애들한텐 투표권이 없기 때문이겠지요. 애 때리길 능사로하는 어른들의 표가 날아갈까 두렵기 때문이겠지요. 예전에 박한상이 아버질 죽였을때 모든 언론에서 난리가 났었지요.

늙은이들은 이때다 하고 효가 실종되었느니 말세니 어쩌구 난리였구, 학교에서도 효교육이니 뭐니 난리였습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어느 시대에나 미친놈은 있게 마련인데두 말입니다.

그런데 왜 이번 사건은 신문 한 구석에 조차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을까요. 사실 박한상만 패륜적입니까? 이런 인간들은 패륜적이 아닌가요. 까놓고 말하면 박한상 사건이야말로 돈이란 목적이 있었습니다.

더 까놓고 얘기하면 돈이면 다된다는 황금만능주의를 심어준건 당신들 어른들이 아닌가요? 돈때문에 부모, 형제간에도 죽기살기로 싸우던 모습을 보여준게, 그렇게 다른 사람을 짓밟아서라도 잘살아야된다고 가르친 것이 당신들 아닌가요?

극단적이지만 한 가지 실화를 들어보겠습니다. 한 가정이 있었습니다. 그 아버지는 술을 마시거나 기분이 나쁘면 그 어머니를 때렸습니다. 그 집 아이들은 늘 불안과 공포에 떨었습니다. 여기서 설마 아버지가 자기 자식을 죽이겠느냐 내지는 자식 잘못되기를 바라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하는 개소리는 하지 말아주세요.

세상엔 당신들의 상식에 맞는 일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실제로 이번에 알려진 사건 뿐만 아니라 부부싸움을 하다가 화가 난다고 2개월된 딸을 죽여서 암매장까지 한 아버지도 있습니다. 얘기가 다른데로 흘렀군요.

결국 두 딸은 정신병원에 입원을 했고, 아들은 사회에 적응을 못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평소에는 얌전하지만 술을 마시면 매우 폭력적으로 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친구와 술을 마시고, 같이 집으로 자러 왔다가 말다툼을 벌이고 친구와 싸웠습니다. 그걸 본 아버지는 자식이 왜 저모양이냐고 어머니를 또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참을 수 없었고, 아버지를 때려 죽였습니다. 이제 그의 인생은 끝난 것입니다. 과연 누가 피해자입니까? 사람들은 상식적으로 그를 아버지를 죽인 희대의 패륜아라고만 말할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일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그의 심정을 이해할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그런 굴레에서 얼마나 힘든 인생을 살아가는지... 그런 것들은 평생을 괴롭힙니다.

매맞고 자란 아이는 대체로 또 때리는 아버지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많은 범죄의 그늘에는 매맞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도사리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언론들은 너무 편안한 시각으로 보도합니다. 말세니, 효가 실종되었느니 어쩌니 하면 기성세대들은 만족할 테니까요.

하지만 아버지의 자식에 대한 폭행이나 살해는 왜 그렇게 작게 다루는지 나는 이해가 안됩니다. 이런 류의 사건에는 피해자만이 존재하는데도…

돈 벌러 나갔다 들어와서 피곤한데, 애가 우니까 던져서 죽이는 사건 같은 것에 대해서는 왜 개탄하지 않습니까? 실제로 가부장적이고, 폭력 불감증인 우리 사회에서 생각보다 많이 벌어지는 일입니다. 그나마 이번에 알려진 사건은 우발적인 범행도 아닙니다. 이런 병들을 치유하기 위한 캠페인이라고 벌려야 되는 게 언론의 역할이 아닐까요?

부모니까 그렇게 하고 나서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느냐구. 그래서 동정심이 간다는 겁니까? 편협한 생각이라고 욕하지 마세요. 그런 당신의 생각이 너무나 편안하고 편협한 생각일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아버지를 죽이자는 말이냐는 한심한 말꼬리는 잡지 말기 바랍니다.

이 글을 읽고, 자기의 폭력이 지나치게 감정적인 것은 아닌지, 범죄행위가 될 수 있지는 않은 건지 반성해보자는 것입니다. 이 글을 쓰는 저 역시 그런 감정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요. 난 그런 폭력행위도 일종의 병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지나치게 폭력에 대해 관용적인 사회 분위기가 아버지들의 그 병을 깊게 하고, 폭력이 점점 더 확대 재생산된다는 점에서 이 땅의 아버지들도 그런 사회 분위기의 피해자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정말 이건 우리가 안고 있는 상처입니다. 병은 스스로 병이 걸렸음을 인정해야 치유할 수 있습니다. 부끄럽다고 해서 이런 류의 말이 나올 때마다 화를 내고 겉만 치료하거나, 그냥 반창고로 상처만 가리려고 하는 기성세대들은 속이 곪을 대로 곪아서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서야 그 병을 인정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제서야 사회병리현상, 도덕불감증이니 어쩌니 하면서 온갖 유식한 말로 호들갑을 떨 것입니다. 개혁은 제도의 개혁보다 의식의 개혁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나같은 사람들이 시끄럽게 한다고 무조건 막지 마십시요. 곳곳에서 들려오는 다소 듣기 싫은 소리가 있어도 겸손히 들어보십시요. 그 소리 하나하나마다 각각의 절박한 사정과 엄청난 진리가 숨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나도 학교 다닐 때, 어린 시절에, 많이 맞아 봤고, 그 당시에는 정말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었지만, 지금은 아련한 추억거리로 남아 있다. 그 시간만 지나면 잊혀질 일을 가지고 왜 그러는가?'

나는 이런 백치들을 증오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 그런 기억들을 느껴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가령 여자가 성폭행을 당했을 때, 그 상처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도 있고, 미친개에게 물린 셈치고 그런 대로 잘 넘어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느끼는 감성은 모두 다른 것입니다. '나도 성폭행을 당했지만, 잘 넘기고 살고 있는데, 너는 왜 자살을 하는가? 넌 참 이상하다.' 이렇게 말하는 것과 다를 것이 무엇입니까? 당신은 참 편안하고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리고 자신도 미칠것 같았다면서 지금 아이들의 미칠 것 같은 심정은 왜 이해 못합니까? 그리고 그 아이들이 어디 가서 하소연도 하지 못하고 속으로 병들어가면서 죽어갑니다.

어떤이들은 이제 나이가 들었으니 잊어야 하구,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그걸 무심코 받아들이고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상이 아닌가?'하는 비참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요. 누군가가 그런 것을 얘기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통계에 의하면 아이들의 72%가 학대를 경험했다고 합니다. 혹시 주위에 그런 아이들이 있다면 신고를 해주세요. 여러분의 관심이 한 아이의 생명을 구할 수도 있습니다.

아동에 대한 폭력은 더 이상 한 가정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랑받지 못한 학대받은 그 아이들이 자라서 사회를 증오하는 지존파, 막가파가 될지도 모릅니다. 어떤이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어렵게 자랐어도 멀쩡한 애들은 얼마든지 있다구요. 그건 강자, 배부른자의 논리구요. 전 오히려 그 아이들이 삐뚤어지는 것이 더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상식적인 일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교과서에는 나올 수 없는 비상식적인 일이 오히려 더 많이 일어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그 피해자가 아니라고 해서 한껏 잘난척하며 나는 폭력을 싫어하는 평화주의자라서 두 쪽이 다 나쁘다는 식으로 뭉뚱그려서 비판하고만 있을 것입니까?

어떤 이들은 아동폭력에 관해 얘기할때 매맞는 아이에게 문제가 있지 않느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애들이 말을 안들어서 그런 것 아니냐고 하기도 합니다. 백번 양보해서 그런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렀다 해도 아이들의 수준을 넘지 못합니다. 문제는 자기 스트레스를 참지 못하는 어른들에게 있습니다. 자제력을 잃은 어른들의 인격적인 결함이 가장 큰 이유이지요.

모두가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고 말한 어느 시인의 얘기처럼 우린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자신이 병들었는지 모르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떤 후배는 내게 이렇게 말합니다. '형, 그런 식으로 글을 쓴다는 건 희생에 불과해.' 이런 글 때문에 내가 다칠 수도 있다는 뜻인가 봅니다.

내 글이 사실 대단한 글도 못되지만, 사회를 비판하면 다칠 수도 있는 우리 사회가 나를 서글프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런 일에 무관심했던 사람들조차 시간이 지나면 차츰 생각이 바뀔 것이고, 그리고 처음부터 자신은 그런 생각을 했던 양 살아갈 것입니다. 물론 그런 세상이 좀더 앞당겨 왔으면 하는 바램이지만, 사실 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광대짓거리인가를 생각하면 내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난 논리학 무용론을 믿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현란한 말과 글도 다른 사람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어떤 사회과학자는 "혁명은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후벼 파내라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좋아한 말이면서 내게 변명의 구실을 만들어 준 말입니다. 난 학생들의 폭력이 싫어 학생운동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더 무서운 폭력이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아니, 무서웠다고 하는 것은 더 정확한 표현이겠지요.

세상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조이는 형태만 달라졌지. 조금도 나아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위에 인용한 말에 대한 내 생각도 조금 바뀌었습니다. '아무리 해도 눈을 뜨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 에겐 때론 눈을 후벼 파낸다는 위협이 눈을 뜨게 할 수도 있다고….'

이젠 많이 잊혀졌고, 아버지에 대해 이해도 하면서, 이만큼 나를 키워준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도 당연히 가지고 있습니다. 가족이란 것에 대한 느낌이 제겐 안락함이라기 보다는 짐으로 느껴질때가 많지만요. 그리고 아버지에 대해 미안한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내 상처는 이미 치유되었거나 잊혀졌다고 하지만, 아직 치유받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의 상처는 어떻게 할 것입니까? 병들었다는 걸 인정할 때만이 상처를 치료할 수 있습니다. 병든 것이 창피하다고 숨겨서는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도 그 병은 치유될 수 없습니다.

좀 잘못된 비유같기는 하지만, 아무리 숨막히는 독정권하의 사회라 해도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억압받는 자와 억울한 일을 당하는 자가 소수라고 해서 무시될 수도 없고, 무시되어서도 안됩니다.

만약 내 글이 역겹다고 생각한다면? 난 생각이 고여 머리 속에서 썩은 냄새가 나는 당신이 더 구역질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왜 이런 글을 쓰냐구요? 나와 비슷한 상처를 지닌 선배와 술을 마시고 울면서 이런 얘길 했더니, 선배는 '그래, 니가 이런 글을 많이 써서 이 사회가 얼마나 병들었는지 많이 알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얼마나 폭력에 대한 불감증에 빠져있는지, 그로 인해 상대방이 받을 상처는 어떤 것인지 한 번만이라도 생각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글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비웃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글 역시 그만큼 폭력적이며, 내 글 때문에 상처받는 사람들 역시 많을테니까요. '가요 사전심의 폐지에 결정타를 먹인 것은 서태지 이지만,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몇년 전부터 공권력과 맞서 싸운 정태춘, 박은옥 부부의 역할이 사실은 더 큰데도 요즘 사람들은 모두 서태지가 되고 싶어합니다. 정태춘을 누가 알아 주느냐고 말입니다.

솔직한 발언이지만, 난 사실 젊은 세대의 그런 점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밑거름 속에 새로운 세상이 오고, 그 시기에 영웅도 탄생하는 것입니다.난 영웅이 되고 싶지도 않고, 자격도 없습니다. 단지 내 조그만 노력이 세상을 조금씩 조금씩 바꿔 나가는 데 밑거름이 되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냉소주의자들은 '네까짓 놈이 그래봐야 세상은 바뀌지 않아.'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차갑게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제발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주위에 그런 아이들이 있으면 그 집안 일이다고있습니다. 넘기지 마시고, 신고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관심이 한 아이의 생명을 구할 수도